서 론
1981년 미국의 질병통제예방센터(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 CDC)에서 폐포자충 폐렴(pneumocystis pneumonia)의 비정상적인 유행을 보고한 이후[1], 전 세계적으로후천성 면역결핍증(acquired immunodeficiency syndrome, AIDS)의 대유행이 있었다. 그 후 사람면역결핍바이러스(humanimmunodeficiency virus, HIV)가 AIDS의 원인 병원체임이 규명되었고[2], 30년 동안 치료 및 예방에 대한 많은 발전이 있었다. 오늘날 HIV 감염은 완치될 수는 없지만, 성공적인 치료법과 예방법이 알려져 있는 극복 가능한 질환으로 생각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1985년에 첫번째 증례가 보고된 이후로 현재까지 약 9000명 정도의 HIV 감염인이 진단되었는데, 과거에 시행되었던 소규모 연구들에 의하면 국내 HIV 감염인에서 발생하는 기회 감염에는 결핵, 폐포자충 폐렴, 칸디다증, 거대세포바이러스 감염, 크립토코쿠스증 등이 있었다[3,4].
1990년대 후반 이후에 성공적인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가 널리 보급되면서 면역저하로 인한 기회 질환의 빈도가 과거보다 감소되었다. 하지만 국내에서 여전히 면역저하가 진행된 상태에서 처음 진단받는 환자들이 조기에 진단받는 환자들보다 많아서, 진단 시에 기회 질환이 발생한 환자들이 드물지 않다[5].
HIV 감염인은 면역저하로 인해 다양한 감염병이 발생한다. 발생할 수 있는 감염병의 종류는 수도 없이 많은데, 본 글에서는 HIV 감염인에서 발생하는 몇 가지 대표적인 감염병들에 대해 그 임상적 특성과 진단, 치료법에 대해 기술하겠다.
폐포자충 폐렴
원인 병원체는 Pneumocystis jirivecii이다. 1980년대 초반 HIV 감염의 유행이 있기 이전에는 주로 미숙아에서 발생하는 폐질환이었다. 폐포자충 폐렴은 주로 CD4+ T 세포수가 200개/µL 미만에서 발생한다. 서서히 진행하는 호흡곤란, 발열, 마른 기침이 주 증상이다. 흉부방사선 검사의 전형적인 소견은 양측 폐를 침범하는 대칭성 간질성 폐침윤인데[6], 결절, 낭종 등의 비전형적인 소견도 드물지 않고, 흉부방사선 소견이 정상인 경우도 있다. 폐포자충 폐렴을 진단하기 위해서는 P. jirovecii를 호흡기검체에서 동정해야 하는데, 유도객담, 기관지세척액(bronchoalveolar larvage), 폐조직 검사 등을 이용하여 검사할 수 있다[7].
CD4+ T 세포수 200개/μL 미만인 HIV 감염인, 구인두 칸디다증의 병력이 있는 HIV 감염인에게 폐포자충 폐렴 발생을 막기 위한 예방약제를 투여해야 하며[8], 폐포자충 폐렴에서 회복된 환자들에게는 폐포자충 폐렴의 재발을 막기 위해 이차예방요법을 시행해야 한다. 예방을 위해 추천되는 약제는 trimethoprim-sulfamethoxazole (TMP-SMX)이다[9]. 폐포자충 폐렴의 일차 치료제는 TMP-SMX이고 21일간 치료한다[10,11]. 심한 환자(산소를 공급하지 않은 상태의 동맥혈 산소분압이 70 mmHg 미만이거나 [A-a] DO2가 35 mmHg 이상인 경우)에게는 스테로이드를 투여해야 한다[12].
결핵
결핵과 HIV 감염은 서로의 발생률을 높일 뿐 아니라, 서로의 질병 상태를 악화시킨다[13,14]. 국내 HIV 감염인에서 결핵은 가장 흔한 기회감염 중 하나이며, 폐결핵과 폐외결핵을 모두 포함하여 HIV 감염인에서 발생한 기회감염의 12.5-25%를 차지하고 있다[3,4]. 면역 저하가 심하지 않은 HIV 감염인에서 발생하는 활동성 결핵은 HIV 비감염인과 유사하지만, 면역 저하가 심한 HIV 감염인에서는 폐외 결핵의 빈도가 높고, 육아종 소견이 없는 경우도 있고, 전형적이 폐결핵 소견과 달리 동공화가 드물고, 파종성 침윤이 흔하게 관찰될 수 있고, 심지어 흉부 방사선 사진이 정상인 경우도 있다[15,16].
모든 HIV 감염인에게 잠복 결핵을 진단하기 위해 결핵피부반응검사(tuberculin skin test, TST)나 Interferon-γ release assay (IGRA)를 시행해야 한다[17,18]. 잠복 결핵 검사가 양성을 보이고 활동성 결핵의 증거가 없으며 활동성 결핵이나 잠복 결핵에 대한 치료를 받은 과거력이 없는 HIV 감염인은 잠복 결핵을 치료해야 한다[19]. 하지만 국내 실정에 적합한 잠복 결핵 진단 및 치료 지침은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HIV 감염인에서 활동성 결핵의 치료는 HIV 비감염인에서의 치료 원칙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결핵약과 항레트로바이러스제 간의 약물 상호작용에 대한 특별한 주의가 필요하며,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를 시작한 후에 면역재구성증후군(immune reconstitution inflammatory syndrome, IRIS)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한다.
활동성 결핵이 있는 HIV 감염인에서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를 시작하는 시점은 CD4+ T 세포수에 따라 다르게 선정하는 것이 권장되는데, CD4+ T 세포수가 50 미만인 경우에는 2주 이내에 항레트로바이러스치료를 시작해야 하고, CD4+ T 세포수가 높은 경우에는 임상 양상에 따라 조금 늦출 수는 있으나 늦어도 8-12주 이내에는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20].
파종성 Mycobacterium avium Complex 감염
HIV 감염인에서 발생하는 파종성 Mycobacterium avium Complex (MAC) 질환의 95% 이상이 M. avium에 의하여 발생하며[21-24], 호흡기 또는 위장관계를 통하여 흡인되거나 섭취되어서 감염된다. 대부분 MAC 질환은 CD4+ T 세포수가 50개/μL 미만인 경우에 발생하는데, 여러 장기를 침범하는 파종성 형태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25,26]. 혈액, 림프절, 골수, 다른 무균 검체 및 조직에서 MAC이 동정될 경우 파종성 MAC 질환을 확진할 수 있는데[27,28], 균종을 확인하기 위해 유전자 검사를 이용할 수 있다.
치료제는 clarithromycin이 일차약제이며, 그 외 azithromycin, ethambutol, rifabutin, streptomycin 등을 병용하여 치료한다. CD4+ T 세포수가 50개/μL 미만인 HIV 감염인에게는 파종성 MAC 질환을 예방하기 위해 azithromycin 또는 clarithromycin을 예방적으로 사용한다[29].
점막피부칸디다증(Mucocutaneous candidiasis)
구강과 식도에 Candida albicans에 의한 칸디다증이 흔히 발생하는데, 특별한 이유가 없이 구강칸디다증이 있다면 면역 저하에 대한 평가를 위해 HIV 감염에 대한 검사를 해야 한다. 구강칸디다증은 볼, 구강점막, 혀 표면에 생기는 크림같은 흰색판 모양의 병터가 특징적이다. 식도칸디다증의 증상은 가슴 통증, 삼킴 토증 등이 있고 내시경검사에서 식도에 구강칸디다증과 유사한 흰색판들이 관찰되며 식도점막에 얕은 궤양이 동반될 수 있다. 육안적 소견만으로 진단이 가능하지만 KOH 표본을 만들어서 효모를 관찰하여 확진할 수 있다. 치료제로는 fluconazole이 일차약제이다. Fluconazole을 반복해서 사용하는 경우에는 fluconazole 내성 C. albicans 뿐만 아니라 non-albicans Candida species, 특히 C. glabrata가 증가할 수 있다[30-32]. 예방적으로 fluconazole을 투여하는 것은 추천되지 않는다.
크립토코쿠스증(Cryptococcosis)
대부분 Cryptococcus neoformans에 의해 발생하며, 주로 수막염 또는 수막뇌염으로 발생한다[33]. 대부분 CD4+ T 세포수가 50개/μL 미만인 경우에 발생한다. 뇌척수액 검사에서는 혈청단백 경한 증가, 포도당 감소 또는 정상, 뇌척수액세포증가증, 대부분 림프구 등의 이상 소견이 관찰되며, 일부 환자에서는 뇌척수액 세포가 없는 경우도 있다. 그람 또는 India 잉크 염색에서 많은 효모가 관찰된다. 뇌척수압은 대개 상승되며 20 cmH2O 이상 증가하는 경우가 75%에 이른다. 뇌척수액 크립토코쿠스 항원은 거의 모든 수막염 및 수막뇌염 환자에서 고역가로 검출되며, 혈청 크립토코쿠스 항원도 중추신경계, 파종성인 경우에는 거의 항상 양성이므로, HIV 환자에서 크립토코쿠스 항원은 크립토코쿠스증 진단에 유용한 검사이다[34].
치료는 amphotericin B deoxycholate 0.7 mg/kg와 flucytosine 100 mg/kg (하루 4회 분할)를 2주 이상 병용 투여하는 유도 치료 후, 반복 시행한 뇌척수액 배양이 음전된 것을 확인하고 fluconazole 400 mg으로 유지 치료를 장기간 지속한다. 뇌척수압이 20 cm H2O 이상으로 높은 경우는 뇌척수압을 낮추기 위해 매일 요추천자를 시행해야 한다[35,36]. 매일 요추천자를 시행해도 뇌척수압이 조절되지 않으면 뇌척수액 단락술을 고려해야 하며, corticosterioid나 mannitol의 사용은 추천되지 않는다.
톡소포자충 뇌염(Toxoplasma gondii encephalitis)
Toxoplasma gondii가 조직 안에 낭종(cyst)으로 잠복해 있다가 재활성화 되어 발생한다[37,38]. 두통, 의식변화, 운동 마비, 발열 등의 증상이 있다. CT 또는 MRI에서 조영 증강되는 종괴나 고리 모양의 병변으로 관찰된다[39,40]. 대부분에서 톡소플라즈마 IgG 항체가 양성이므로[41], CT 또는 MRI에서 조영 증강 병변이 보이는 경우 톡소플라즈마 IgG 항체 검사를 실시해서, 양성이라면 이에 대한 치료를 먼저 고려하고, 음성이라면 림프종, 결핵, 뇌농양 등과의 감별을 위해 조직검사를 고려한다. 톡소포자충 뇌염의 일차약제는 pyrimethamine, sulfadiazine, leucovorin을 병용 투여하는 것이다[42,43]. 이차약제로는 pyrimethamine, clindamycin, leucovorin 병용 투여를 사용할 수 있다. CD4+ T 세포수가 100개/μL 미만이면서 톡소포자충 항체가 양성 HIV 감염인에게는 톡소포자충 뇌염에 대한 예방 치료를 시행해야 하는데, 폐포자충 폐렴 예방을 위해서도 사용되는 TMP-SMX을 매일 투여하는 것이 권장된다[44].
거대세포바이러스 감염
잠복 감염이 면역 저하로 인해 재활성화되어 각종 장기에 질환을 일으킨다. HIV 감염인에서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장기 질환은 망막염이다[45-47]. 한쪽 눈에서 시작되어 양쪽 눈으로 진행하고, 치료하지 않으면 빠른 시간 내에 실명을 초래할 수 있다[48]. 무증상인 경우도 있지만, 비문증, 암점(scotoma), 말초시야결손 등이 동반될 수 있으며, 망막중심에 병변이 있거나 황반(macula)이나 시신경에 영향을 미친 경우 시력저하나 중심시력상실이 생긴다. 거대세포바이러스 망막염은 특징적인 망막의 괴사성 병변을 유발하며, 망막출혈이 동반되기도 하여, 이러한 망막의 병변을 안과의사가 관찰하여 진단한다. 치료제로는 경구 valganciclovir, 정주 ganciclovir, 정주 ganciclovir 이후 경구 valganciclovir, 정주 foscarnet, 정주 cidofovir, ganciclovir 안내 삽입술과 valganciclovir의 병합 치료 등을 사용한다[49-54].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로 CD4+ T 세포수가 100개/µL 이상 유지될 정도로 면역이 회복될 때까지 장기적인 유지 치료가 필요하다.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 후 면역재구성증후군으로 포도막염이 발생하거나 시력이 악화될 수 있으므로 주의를 요한다. 거대세포바이러스는 망막염 외에도 식도염, 폐렴, 대장염 등을 일으킬 수 있다.
진행성 다발성 백질뇌병증
진행성 다발성 백질뇌병증(progressive multifocal leukoencephalopathy, PML)은 JC virus (JCV)에 의해 발생하는 중추신경계의 기회 감염이다. 성인의 약 85%는 JCV 혈청양성을 보이는데[55], HIV 감염인을 제외하면 PML이 발생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가 시작되기 전에 AIDS 환자의 3-7%에서 발생한다고 보고되었고 대부분이 6개월 이내에 사망하는 치명적인 질환이었는데[56],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가 보편화되면서 그 발생빈도가 현저히 감소했고, 1년 이상 생존율도 50% 이상으로 늘어났다[57]. 점진적으로 발생해서 지속적으로 진행하는 중추신경계의 탈수초화로 인해 감각/운동신경 편마비, 실조, 의식저하 등의 신경학적 기능저하가 점진적으로 발생한다. 뇌 MRI에서 T2 영상에서는 음영증가를 보이고 T1에서는 음영감소를 보이는 다발성 백질 병변이 관찰된다. 대부분의 경우 임상양상과 영상의학적 소견에 의해 PML을 진단하는데 무리가 없지만, 뇌척수액 PCR 검사를 통해 JCV DNA를 확인하여 확진할 수 있다. 현재까지 PML에 대해 개발된 특이한 치료법은 없으며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를 통해 면역기능을 회복시키는 것이 주요 치료이다.
카포시육종
카포시육종은 헤르페스바이러스-8 (human Herpes virus-8; HHV-8)이 일으키는 악성 종양이다. 대부분의 만성 HHV-8감염자는 무증상인데[58], 면역저하로 인해 카포시육종이 발병할 수 있다. 다양한 증상을 나타낼 수 있으나 대부분 압통이 없고 자주색의 단단한 피부병변이 있다. 구강내 병변이 흔하며 내장장기로의 퍼짐이 있을 수 있고 간혹 피부병변이 없는 경우도 존재한다. 조직검사를 통해 진단한다.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를 통해 면역을 회복시키는 것이 필요하며, 병변의 범위에 따라서 국소적 치료나 항암화학 치료, 인터페론 등의 면역 조절 치료 등을 사용할 수 있다. HHV-8은 카포시육종 외에도 다중심성 캐슬만질환(multicentric Castleman disease), 일차성 삼출성 림프종(primary effusion lymphoma) 등을 일으킬 수 있다.
결 론
HIV 감염인에서 흔히 발생하는 감염병들을 대략적으로 기술하였는데, 이외에도 매독 등의 성매개 감염병, 세균성 호흡기 질환, 원충 감염, 수두대상포진바이러스 감염, 인유두종바이러스 감염 등도 HIV 감염인에서 흔히 발생하는 감염병들이다. HIV 감염에 대한 효과적인 치료법과 예방법이 개발되고 보급되면서 HIV 감염의 세계적인 유행이 조금씩 진정되어가는 기미를 보이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진단되지 않은 환자가 진단된 환자보다 더 많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당분간 HIV 감염인 수는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본 글에서 기술한 다양한 기회감염에 대한 국내 진료 지침이 개발되어 있으므로[59], HIV 감염인을 진료할 때에 이를 참고하는 것이 좋겠고, 앞서 기술한 감염병들이 의심되거나 진단된 환자에서 HIV 감염도 면역저하의 원인 중 하나로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