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호락논쟁은 충청 기반의 호론계(湖論系) 학자들과 서울 및 근기(近畿) 기반의 낙론계(洛論系) 학자들 사이에서 벌어진 논쟁이다. 이 논쟁은 ‘사단칠정논쟁’과 더불어 조선조 성리학(性理學)의 2대 논쟁으로 꼽힌다. 조선조에서 축적된, 호락논쟁의 학술적 성과가 사단칠정논쟁 못지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호락논쟁에 관한 학계의 연구는 사칠논쟁에 관한 연구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지금까지의 연구에서 호락논쟁이 사칠논쟁만큼 주목받지 못했던 이유 중의 하나는, 호락논쟁을 정치적・당파적 대립에 의한 것으로 파악하는 선입견이라고 본다. 물론, 호락논쟁을 ‘당파적 이해관계와 무관하게 진행된 순수 학술논쟁’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으나, 호락논쟁이 사칠논쟁만큼이나 철학적으로 중요한 쟁점들을 다룬 논쟁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오히려 논쟁에서 다루어진 주제들의 깊이나 넓이로 보았을 때, 호락논쟁은 사칠논쟁보다 학술적으로 더욱 진전되고 심화된 논쟁이었다. 하지만, 호락논쟁의 이러한 가치는 이에 관한 연구가 충분히 집적된 뒤에야 밝혀질 수 있다. 그리고 호락논쟁에 관한 연구가 동력을 얻기 위해서는 ‘학술적으로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문제들을 다룬 한가한 논쟁’, ‘철학적 논쟁의 탈을 쓴, 정치적 권력투쟁’이라는 식의 선입견을 잠시 놓아둘 필요가 있다. 그런데 필자가 보기에, 호락논쟁을 대립 일변도로 파악하는 견해는 이러한 선입견을 형성 혹은 강화하는 밑거름으로 작용한다. 반대로, 호락 학자들 간의 교유 양상을, 갈등이나 친목 한쪽에 치우침 없이 양면에서 살펴보는 일은, 이러한 선입견의 시비를 검토하고 호락논쟁을 다시 평가하려는 새로운 시도의 기반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기반을 제공하기 위하여, 본고에서는 호락 학자들 간의 교유 양상을 조명하되, 지금까지 주목되지 않았던 친목의 사례를 중심으로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례 검토에 앞서, 호락논쟁의 철학적 의의를 분석함으로써 이 논쟁이 지닌 무게와 심각성을 가늠해볼 것이다. 호락논쟁의 철학적 의의를 먼저 따져보는 이유는 본고의 최종 목표가 호락논쟁에 관한 정당한 평가와 적실한 분석의 시급성을 알리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만약 호락논쟁을 ‘철학적으로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논쟁’으로 이해하거나, 호락 간 철학적 견해의 대립을 ‘충분히 해소될 수 있는 대립인데도 당파성을 지키느라 고수하는 것’으로 간주한다면 본고에서 아무리 호락 간 교유 사례를 다양하게 제시한들 이러한 설득은 애초에 가능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Ⅱ에서는 먼저 호락논쟁의 핵심쟁점과 그 철학적 의의를 대략 서술할 것이다. 이어지는 Ⅲ에서는 호락 간 대립이 강화되었던 경위를 살펴보고, Ⅳ에서는 이러한 대립에서도 발견되는, 호락 학자들 간의 친목과 교유의 사례를 소개할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사례의 발굴과 소개가 호락논쟁의 연구를 촉구하는 데에 일조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키워드

호락논쟁, 호론, 낙론, 최석, 한원진, 이재, 홍직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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