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본 논문은 한국 신종교 개창자인 증산의 불교 수용에 대한 인식과 태도 그리고 후대의 변용에 대하여 재검토하고자 쓰여진 것이다. 흔히 한국 신종교사상의 특징 중 하나를 유불선 삼교의 통합이라고 한다. 그러나 한국 신종교의 발생과 관련하여는 개창자의 사유체계와 더불어 시대적 상황 또한 간과할 수 없는 요소이다. 다시 말하면, 한국신종교 개창자가 시대적 요구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으며 그의 종교사상을 당시인들에게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했는가 하는 점이다. 19세기말의 한국사회는 종교적 측면에서 민중의 안식처였던 유불선 삼교가 그 기능을 상실하고 민중에게 커다란 실망감을 주었던 시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증산이 삼교(三敎)의 종교적 요소를 수용한 것은 그에 대응되는 종교적 당위성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상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한 첩경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이 논문은 유불선 삼교 가운데 특히 불교의 수용과 전개과정에 집중하여 논의하였다. 특히 증산이 시대인식을 통해 수용한 불교의 미륵사상이 당시 민중의 시대적 요청과 어떠한 인과관계가 있는지도 주목할 필요가 있었다. 나아가 증산 사후 증산을 따르던 종도들에 의해 창립된 증산계 교단들이 부각시킨 미륵사상은 일제 강점기의 종교정책과 상관관계가 있음도 살펴보았다. 이에 본 연구자는 증산의 불교 수용이 당대인식을 통한 민중들과의 그러므로 증산의 삼교수용 형태와 동기를 고찰하는 것은 증산 소통의 방편이며, 증산교단에 있어 후대의 불교적 전개 양상은 일제 강점기의 정치적 소산이라는 해석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하였다. 따라서 증산의 종교사상에 있어 불교는 그의 종교 사상을 전개하는 중요한 요소이나 증산사상의 본원(本源)은 아니다. 증산의 불교 수용은 민중을 향한 증산의 고뇌와 민중의 열망이 부합되어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러므로 증산의 종교사상을 이해함에 있어 유불선 삼교의 융합 이른바 ‘syncretism’에 입각한 해석은 그의 종교사상을 올바로 이해하는 태도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키워드
증산, 불교, 미륵사상, 일제의 종교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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