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전근대 지식인들은 『사기』를 편찬한 사마천처럼 역사를 기록하는 주체인 동시에 역사에 기록되는 객체가 되고 싶은 열망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문집에서 碑誌傳狀類의 생애자료들이 얼마나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는가를 보면, 쉽게 납득할 수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墓碑․墓誌 작성의 기초자료로 사용되기 위해 편찬되는 行狀과 年譜가 있다. 이들은 한 인간의 생애를 기록함에 있어 주관적 판단을 배제한 채, 구체적인 삶을 가능한 한 자세하면서도 있는 그대로 적어가는 ‘사실의 기록’이 되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우리의 그런 기대와 달리, 亡者의 삶을 빗돌에 새겨 영원히 전하고 싶어 하는 후손 또는 제자에 의해 생애자료들은 크고 작은 가공과 손질이 더해지곤 했다. 그런 점에서 이들은 ‘기억의 서사’라 부를 수도 있다. 본고는 이런 사실에 유념해야 함을 환기시켜주기 위해, 잘 알려진 몇몇 사례를 되짚어보는 과정을 거치고자 했다. 먼저 퇴계 이황의 사후, 제자그룹에 의해 얼마나 오랜 논의를 거쳐 정성스럽게 亡者의 문집과 연보가 만들어져갔는가를 살펴보았다. 그건, 문집과 연보 편찬의 한 전범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동일하게 밟아갔음에도 불구하고 남명 조식의 경우, 뒷사람의 논란이 분분했다. 조식의 제자가 주축이 된 북인정권이 몰락함에 따라 스승의 생애자료까지 온갖 숱한 수난을 겪어야만 했던 것이다. 하나의 비유를 들면 이렇다. 초상화는 대상이 되는 사람의 精髓를 있는 그대로 그려내야 하는 것이지만, 실제로 그림의 정채는 대상 인물의 인품보다 화가의 그림 솜씨에 좌우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문집과 연보도 유사하다. 연보의 편찬은 대상 인물이 살아간 자취를 사실대로 기록해야 하는 것이지만, 뒷사람이 그 사람을 어떻게 기억하고 또는 기억하게 만들고 싶어 하는가에 따라 달라지곤 했다. 그런 극단적인 사례를 탁영 김일손의 경우에서 확인하게 된다. 그의 문집 『탁영집』은 모두 일곱 차례 간행되는데, 改刊의 계기는 그 인물의 추숭과정과 관련되어 있었다. 복권과 증직이 이루어지고, 서원을 지어 배향하게 되고, 서원에 사액이 내려지고, 마지막에는 시호가 내려지는 등 굵직한 사건이 있을 때마다 간행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때마다 김일손의 이미지는 조금씩 바뀌어갔다. 문장에 뛰어났던 인물에서 절의까지 겸비했던 인물로, 그리고 문장은 餘事였을 뿐이고 오직 덕행에 탁월했던 인물로 그려졌던 것이다. 19세기 말 김일손을 문묘에 배향하고자 했던 후손의 열망이 그런 변화를 추동했던 원동력이다. 그리하여 급기야 『탁영선생연보』까지 찾아내게 되었지만, 기실 그것은 가상으로 재구한 ‘기억의 서사’에 다름 아니었다. 그와 같은 생애자료의 실상을 확인하게 되면, 한 인간의 삶을 객관적이고도 廣密하게 재구성한 集成年譜의 필요성에 절감하게 된다. 그런 ‘정확한’ 생애자료가 있어야 ‘좋은’ 평전 쓰기도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키워드

연보, 평전, 생애자료, 사실, 기록, 기억, 서사, 이황, 조식, 정구, 김굉필, 정여창, 김일손, 탁영집, 탁영선생연보, 집성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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