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同德會는 正祖가 자신의 등극에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한 徐命善, 鄭民始, 洪國榮, 金鍾秀 등을 치하하고 결속을 도모하기 위한 모임이다. 김종수는 이 모임의 일원으로 정조의 股肱之臣이 되었다. 정조가 즉위한 후 몇 달 만에 경기도 관찰사에까지 올랐고 이듬해에는 병조판서의 막중한 임무를 맡아 병권을 잡았다. 육조의 판서를 두루 지내고 우의정, 좌의정, 판중추부사, 봉조하 등을 역임하였다. 이와 함께 규장각 제학과 홍문관 대제학으로서 文衡까지 담당하여 규장각의 중요한 사업을 충실하게 수행하였다. 본고는 이러한 인물인 김종수의 삶을 정조와 연계하여 밝혔다. 정조의 고굉지신으로 막강한 권력을 누린 김종수지만, 국정이 안정기에 접어들자 바로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明哲保身의 뜻을 지켰다. 大義를 맡았지만 더러움에 물들지 않아 그 행적이 우뚝하고 마음이 휑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정조가 突兀空蕩墅主人이라는 호를 내리고 또 솔직하여 망발을 즐긴다는 꾸짖음을 내리자, 김종수는 스스로의 호를 率翁이라 하였다. 정국과 거리를 두는 ‘山人’으로 살아가는 것이 정조의 뜻임을 확인하고 1780년 무렵부터 ‘산인’의 이미지를 지켜나갔다. 형 金鍾厚와 함께 대모산을 마주보는 수서의 光秀山 기슭에 머물렀고 다시 의왕 백운호수 남쪽 백운산 아래로 물러나 自怡堂과 野人室을 짓고 거처하면서 명철보신의 뜻을 잃지 않았다. 또 노년에는 다시 올림픽공원 안의 夢村으로 이주하여 솔옹 혹은 夢梧山人으로 살았다. 그리고 말년에는 아예 도성 출입을 삼가고 아름다운 산수를 유람하거나 도성에서 멀리 떨어진 아들의 임지에 머물렀다. 이 때문에 김종수는 죽음에 이를 때까지 정조로부터 지극한 은총을 입었고 사후에도 거듭 그 삶이 표창되었으며 정조의 廟庭에 들 수 있었다.

키워드

김종수, 동덕회(同德會), 돌올공탕서주인(突兀空蕩墅主人), 솔옹(率翁), 몽오산인(夢梧山人), 자이당(自怡堂), 야인실(野人室)

참고문헌(17)op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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