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1703년(강희 42) 강희제는 규서를 조선에 사신으로 파견한다. 규서의사행은 사행 기록과 어필 하사라는 측면에서 주목된다. 이 사행을 온전히이해하기 위해서는 강희 연간 권력의 중심에 접근한 명주 가문의 역사와규서 본인의 정치적 성취, 그리고 삼번의 난 이후 수정된 강희제의 통치전략을 함께 시야에 둘 필요가 있다. 규서의 사행 기록에서 주목되는 점은 규서가 유교적 전통에 매우 해박하였으며, 이를 활용하여 적극적으로 조・청 관계를 재구성하였다는 점이다. 이는 병자호란이라는 무력적 수단을 통해 구축된 조・청 관계의 역사를 유교적 수사들로 윤색하는 작업이었다. 규서의 시도는 한족 문인들과의 적극적 교유, 그리고 한림원을 통해 획득한 정보를 통해 가능하였다. 규서의 시도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규서는 어필 하사라는 이벤트를통해 자신의 생각을 외교 현장에 구현하고자 하였다. 그 결과 1680년대어필 하사의 대상에서 제외되었던 조선에 어필이 하사되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1703년의 어필 하사가 규서의 기획이었기 때문에 옹정 연간조선은 다시 어필 하사의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키워드

규서(揆叙), 명주(明珠), 강희제, 『익계당시집』, 어필

참고문헌(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