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고대 지중해에서 방랑이나 이주, 식민 활동은 매우 일상적인 일이었다. 그런데 고대 그리스의 이주나 식민 사례 다수가 상당히 유사한 패턴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크게 하나는 델포이 아폴론 신의 명령 혹은 권고에 의한 것, 다른 하나는 먼 조상의 혈연적 유대에 의해 식민지 개척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가끔 두 가지가 서로 연결될 경우도 있다. 그리고 이와는 조금 다른 맥락에서 고대 지중해 세계에서 전쟁의 원인과 관련한 담론이 흔히 여성 납치 사건과 연관되어 전개되었다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예를 들어서, 납치 혹은 실종되었던 여성 들인 이오, 에우로페, 헬레네, 메데이아(자진하여 납치 혹은 실종된 경우) 등은 고대 지중해 세계의 갈등과 전쟁의 원인이 되었다. 그런데 아르고스, 페니키아, 코린토스 등, 이들 여성이 연관된 나라들이 전통적으로 해외 진출 및 교류가 활발했던 곳이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여성 실종 관련 담론은 고대 지중해의 해상 및 식민 활동과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었을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겠다. 고전기 식민 활동에 가장 앞장섰던 아테네에서 이러한 실종 납치 담론은 다시 뚜렷하게 나타난다. 비극 『결박된 프로메테우스』와 소포클레스의 『탄원하는 여인들』에서 이오 이야기는 중요한 소재로 다루어지며, 특히 『결박된 프로메테우스』에서는 ‘이오가 자신과 자손들을 위해서 머나먼 식민지를 세우도록 정해져 있다고 명백하게 말하고 있다. 이소크라테스는 그리스의 오리엔트 원정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이야기하면서 헬레네 이야기를 다시 끄집어낸다. 그는 헬레네를 납치하였던 이들을 철저하게 응징한 트로이아 전쟁을 극찬하며, 또 하나의 오리엔트 원정을 감행할 것을 역설한다. 요컨대 여성 납치나 폭력은 근본적으로 타국의 남성에 의한 내적 공간의 침입으로, 칼에 의한 침입과 같은 것으로 여겨지게 된다. 따라서 자국의 여성이 납치당하였으므로 이를 되찾는다는 것은 전쟁의 정당한 구실, 침략이나 식민지 건설을 합리화하는 방편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키워드
여성 납치, 지중해, 식민, 이오, 에우로페, 메데이아, 헬레네, 아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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