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이 글은 <성산별곡> 연구사를 상세히 정리하여 그간 논의의 내력을 밝힌 것이다. <성산별곡> 연구사에 관한 기존의 언급이 없지는 않으나 대개 소략하게 기술되어 있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아울러 <성산별곡>을 둘러싼 논쟁이 가장 활발하였던 1960~80년대로부터 대략 50~70여 년이 지난 지금 선행 연구의 가치를 다시금 살피고 후속 논의의 방향성을 재고해 보는 것 또한 연구사적 의의가 있을 것이다. 이에 본고에서는 국문학 연구사 초기의 논의부터 <성산별곡> 연구가 가장 활발히 이루어졌던 시기의 연구를 중점적으로 고찰하였다. 연구사 초기에 <성산별곡>은 정철의 다른 가사 작품에 비해 비교적 주목받지 못했다. 이러한 초기 연구의 흐름은 『송강별집추록유사』, 『문청공유사』, 『서하당유고』 등 정철과 그의 문학 활동에 직접 관계된 자료들이 발굴되면서 한 차례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위 자료들을 바탕으로 <성산별곡>의 창작 시기와 찬미 대상에 관한 다양한 의견들이 제출되었다. 이때까지 <성산별곡>의 작자는 의심의 여지 없이 송강으로 인정되었으나, 이후 제기된 石川 林億齡 창작설이 학계에 적잖은 반향을 일으키며, 연구의 초점은 작자 문제로 옮아갔다. 대부분의 연구는 석천 창작설에 반박하며 정철의 작품이라는 종래의 의견에 더욱 힘을 싣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후 반론 및 재반론이 오고 가며 <성산별곡>의 작가, 창작 시기, 찬미 대상 등과 관련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졌다. 후속 연구들은 이러한 연구 경향이 작품 내적 해석을 간과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작품의 구조와 미적 특질에 착안하였다. 해당 연구들은 <성산별곡> 주변의 여러 작품과의 영향 관계를 파악하여 <성산별곡>의 문학사적 위치를 해명한 것, 문답체, 대화체 구조에 착안하여 <성산별곡>만의 특징을 제시한 것, 또 한편으로는 누정, 원림 문화의 영역에서 <성산별곡>의 미적 특질을 밝힌 것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상의 연구사 검토를 통해 <성산별곡>을 둘러싼 여러 쟁점이 여전히 논의의 여지가 있는 상태이며, 다양한 해석적 가능성은 분명 열려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키워드

성산별곡, 정철, 송강가사, 강호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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