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Med Educ Rev > Volume 23(2); 2021 > Article
‘전문직업성’을 넘어 ‘전문직 정체성 형성’으로
의학교육은 궁극적으로 한 사회의 건강문제를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치료자이자 전문가로서의 의사를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따라서 의학교육에서 ‘전문직업성(professionalism)’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간 의학교육은 이를 강화하기 위한 교육과정을 마련하는 등 바람직한 의사상을 정립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전문직업성’ 교육은 윤리와 전문지식에 근거하여 치료자이며 동시에 한 사회 속의 전문가로서 바람직한 의사의 성품과 행동양식을 중심으로 의과대학생들에게 이것을 어떻게 교육할 것인가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어져 왔다. 하지만 ‘전문직 정체성’과 ‘전문직 정체성 형성’에 대한 중요성의 강조는 비교적 최근에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전문직 정체성’은 개인이 전문직업인으로서의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것으로 ‘전문직업성’과는 구별되는 개념이다. 또한 ‘전문직 정체성 형성’은 개인의 정체성과 자신의 직업적 자아를 통합하는 것으로 ‘개인의 가치관, 동기, 행동의 습관을 지속적인 자기성찰을 통해 교정해가는 복잡한 일련의 과정’을 말한다.
의학교육에서 ‘전문직 정체성 형성’은 의사가 전문지식, 술기 및 태도를 습득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그러나 아직 우리의 의학교육은 의사로서의 전문가적 덕목과 행동양식에만 초점을 둔 ‘전문직업성’ 교육에 머물러 있으며, 상대적으로 ‘전문직 정체성 형성’에 관해서는 비교적 관심이 적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에 ‘의학교육논단 23권 2호는 “Professional identity formation (PIF) on medical education”이라는 특집호를 기획하여 ‘전문직업성’을 넘어 스스로 전문가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교육으로까지 나아가야 하는 ‘전문직 정체성 형성’ 교육의 중요성과 그 역사적 맥락을 확인하고, 이를 위한 국내외 의학교육 현장의 다양한 전략과 현황을 점검하고, 이를 강화하기 위한 보다 원론적인 교육학적 이론과 극복해야 할 과제를 알아보고자 하였다.
먼저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의 여인석 교수의 “한국 의사의 역사적 정체성 형성”이라는 제목을 통하여 우리나라 의사의 집단적 자기의식이 역사적 과정을 통해 어떤 변화 과정을 거쳐서 형성되어 왔는지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저자는 일반적으로 의사의 직업적 정체성이 의사라는 직업의 역사적 형성과정을 이해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얻게 되는 것이라고 볼 때, 지난 역사 속에서 의사들의 모습을 확인하여 바람직한 의사의 존재양식을 가늠해보고자 하였다. 역사적으로 의사는 사제적, 관료적, 유의(儒醫)적 정체성 등으로 대표되며, 이러한 의사의 정체성은 오랜 기간에 걸쳐 사회와 상호작용을 함으로써 형성되기 때문에 사회적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공통적 분모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길드적 전통에 따라 오랜 기간 사회와의 상호작용으로 전문가적 정체성이 형성되어 온 서양사회와는 달리 한국사회의 의사는 의료행위의 배타적 허가라는 특권이 근대화의 과정에서 위로부터 갑자기 주어졌다는 점에서 역사적 배경이 다름을 인식시켜준다. 이것은 이미 존재하던 사회적 관행을 법률로 공식화하는 과정이 아니라 법률적 규정을 통해 과거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사회적 관행을 만들어내야 하는 역과정이다. 따라서 한국의 의사는 전문직으로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필요한 역사적 경험이 비교적 적었기 때문에 한국사회가 요청하는 의사상을 새롭게 만들어가야 하는 과제가 남아있으며, 이를 위한 우리나라 의학교육계의 사명은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저자는 투철한 직업윤리는 직업적 자기 정체성에 대한 분명한 자각에서 유래됨을 강조하며, ‘전문직 전체성 형성’ 교육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미국 Southern Illinois University의 한희영 교수는 “전문직 정체성 형성 및 촉진을 위한 의학교육 현황과 고려점”이라는 주제에서 외국 문헌 조사를 통하여 ‘전문직 정체성 형성’을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교육방법과 평가전략에는 어떤 것이 있으며 어떻게 현장에 적용되고 있는지를 소개하고 있다. 지금까지 진행된 ‘전문직 정체성 형성’에 관한 대부분의 연구는 북미와 서부유럽을 중심으로 한 질적 연구였으며, 일반적으로 교육방법은 자기성찰적이었고, 선택과정을 통한 환자 경험이나 지역사회와 연계된 의료현장 경험 위주였으며, 평가는 개별적이고 추적관찰 형태였다고 정리하였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지금까지의 ‘전문직 정체성 형성’ 교육이 특정 교과과정을 통해서 형성되기보다는 학생의 개인적 삶의 영역과 비정규적 혹은 잠재적 교육과정을 통한 경험이 지속적이고도 장기적인 과정을 통하여 형성되는 것이므로, 학생 개인의 배경과 감성 발달의 중요성을 인지하여야 하며, 사회심리적으로 안전한 교육환경 조성을 마련해주는 것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이영희 교수는 우리나라 28개 의과대학을 대상으로 해당 대학에서 운영 중인 ‘전문직업성’ 관련 교육에 대한 방대한 자료를 분석하는 수고를 통하여 “우리나라 의학전문직업성 교육과정에서 ‘전문직 정체성 형성’ 교육 현황”을 소개하고 있다. 자료 분석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기본의학교육에서 관련 교육 현황은 아직 ‘전문직업성’ 교육에 머물러 있는 수준이며, ‘전문직 정체성 형성’에 대한 개념 정리나 관련 문화가 아직은 미성숙한 단계에 머물러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에 저자는 우리나라 기본의학교육에서 ‘전문직 정체성 형성’ 교육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관련 학습목표나 학습성과를 명시화하고, 연속적이고 반복적인 교육과정을 마련해야 하며, 이를 위한 교수개발의 필요성과 함께 체험 가능한 교육내용의 제공, 그리고 자기성찰의 기회가 확대될 수 있는 교육방법과 이를 평가하기 위한 다양한 평가방법의 마련 등을 제안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의 김선 교수는 “전문직 정체성 형성을 위한 의학교육 현장의 과제”를 통하여 전문직 정체성 형성 교육을 위한 다섯 가지 과제를 제안한다. 첫 번째로 의학전문직업성의 학습성과 개발과 이에 대한 개념의 정립이 필요하며, 두 번째는 전문직 정체성 교육을 맡아야 하는 전문가 양성을 위한 다양하고 체계적인 교수개발 프로그램이 마련되어야 하며, 세 번째는 전문직 정체성 형성을 위한 적절한 교육방법 도입의 필요성과 함께 교육방법의 한 예로 비판적 자기성찰을 위한 전환학습(transformative learning)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네 번째로 전문직 정체성 형성을 위한 학습방법으로는 학습자 내면의 의식변화를 끌어내기 위한 자기주도학습의 활용을 제안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전문직 정체성 형성 교육을 평가하기 위해서 기존의 4단계 Miller의 평가체제를 수정한 마지막 단계로 identity (IS) 평가방법의 개발과 이를 위해서 졸업 후 교육과의 연계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제 우리나라 의학교육도 학생들에게 표준화된 의사의 지식, 술기, 태도를 가르치는데 머물러 있기보다는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필요한 다양한 의사의 역할을 익혀가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수많은 갈등과 좌절, 혼란과 타협의 과정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하며, 이 과정에 필요한 촉진자의 역할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또한 의사의 ‘전문직 정체성 형성’에 필요한 다양한 교육방법이 개발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단순한 지식전달자가 아닌 역할모델로서의 의학교육자의 역할도 더욱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나아가 한국적 상황에서 의과대학생들의 개인적․사회적 정체성이 직업적 정체성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등에 관한 연구나 전문직 정체성 형성이 개인이나 의료현장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도 향후 지속적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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