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지구적 차원에서 국가 간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동시에 국가 간의 경제적ㆍ정치적 차이가 점점 심화되어 가는 데에는, 국경을 둘러싸고 군사적인 긴장을 유지ㆍ강화하는 국제 정치의 안보 개념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국내의 집단 간의 차이들에 따른 불평등 문제는 전쟁과 군사적 갈등을 이유로 종종 무시되고 있다. 이때 여성들이 제기하는 평화에 대한 요구는 폭력을 회피하거나 거부하는 여성적 본질에서 기인하는 것이라고 취급되며, 종종 비현실적이거나 혹은 탈정치적인 문제제기로 생각된다. 그러나 돌봄의 윤리는 기존의 이성중심적 인간관에 대한 대안을 제공하고, 여성을 타자로 만든 근대적 남성 주체를 해체하는 기획으로서 유의미하다. 이를 위해 본 논문에서는 모성적 사유라는 개념을 통해 생물학적 운명으로서의 자연화된 모성이 아닌 사회적 관계로서의 모성 경험을 드러내고, 이를 통해 이분법에 의거하지 않은, 다시 말해 전쟁을 전제하지 않고 평화를 사유하는 방법론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는 ‘모성’을 여성의 특수한 경험에 한정시키지 않고 보편적인 인간 활동으로서 개념화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안보담론에서 주체/타자의 도식은 보호와 피보호, 적군과 아군, 민간인과 병사 등 보호하는 남성과 보호받는 여성이라는 이분법적 틀로 수렴된다. 타자는 적이며, 적인 타자와는 어떠한 관계도 불가능하며, 동맹 혹은 협력은 자아 스스로의 독립을 해친다는 자율적인 개인을 전제로 하고 있는 논리이다. “내 몸은 내가 지킨다”는 말은 국방에 동원되지 않는/가지 못하는 이들에게 주체의 지위를 부여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보편자로의 욕망은 차이들을 모두 특수자로 위치시킨다. 한국에서 병역은 여성과 남성, 장애인과 비장애인, 어린이와 어른 간의 위계를 낳게 되는 핵심적인 기제로 작동하고 있다. 그러나 어머니의 경우에는 결코 일방적인 보호/피보호 관계로 재현되지 않는다. “여자는 약하나 어머니는 강하다”라는 표현처럼 어머니는 아이와 남편을 보살피는 자로 인식된다. 이때 남성-주체, 여성-타자 관계는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에서는 다시 전치된다. 이러한 모성에 대한 특별 언급들은 어머니라는 존재가 기존의 성별에 기초한 보호/피보호 관계로는 해석될 수 없었던 영역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돌봄을 주는 존재로서 어머니는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자원과 힘이 있는 존재지만, 어머니가 가진 힘은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승리나 권위의 상징으로 전환되지 않는다. 이 관계의 목적이 승리나 경쟁, 혹은 권위의 취득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어머니와 아이 간에 존재하는 자원과 경험, 힘의 차이들에도 불구하고 둘 간의 관계가 일방적 지배와 피지배 관계가 되지 않는 것은 바로 “모성적 사유” 때문이다. “모성적 사유”란 사라 러딕이 주장한 개념으로, 타자를 폭력과 착취의 합법적인 표적으로 삼는 모든 행위를 전쟁행위라고 봐야 하며 남성중심적 철학에서 감정과 이성, 육체와 정신을 구분하고 이성에 의한 육체의 지배를 용인하는 것을 해체하는 사유이다. 이는 여성의 몸에 있는 자궁, 출산 행위 등 생물학적인 것이 아니다. 출산자-어머니는 양육자-어머니와 분리되며, 출산과정은 사회적 과정으로, 양육과정은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공동의 보편적인 차원의 문제이다. 돌봄의 윤리는 피해 여성을 전시하므로써 여성이 쉬운 표적이라는 것을 알리는 자기 모순에 빠지지 않고, 어머니 여성을 강조하므로써 국가와 협상하는 새로운 여성 주체를 강조하거나, 약자를 보호하는 강자라는 위계적 이분법을 거부하고자 하는 도덕 이론이다. 모성적 사유는 가장 힘 있는 타인을 모델로 삼아 나도 그처럼 되었을 때에만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는 군국주의적인 사유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원에 대한 성찰성과 관계 속에서 스스로의 위치성을 고민하게 하는 사유로 바꾸어낼 수 있다. 현재 안보담론을 구성하는 자주국방과 한미동맹이라는 틀 속에서 허구적이고 이상화된 자율성이라는 개념은 모성적 사유를 통해 상호관계를 인정하고 역사성을 중시하는 상호주체성(intersubjectivity)로 바꾸어내고, 타자를 적대시하는 이분법의 폭력을 타자성에 대한 이해에 기반한 공존으로 변화될 수 있을 것이다.

키워드

여성주의 인식론, 모성적 사유, 안보담론, 상호주체성, 보살핌 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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